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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08의 게시물 표시

생명은 불과 같다.

대학시절에 철학책 읽다가 문득 생명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있었다. 도대체 생명은 무엇인가? 갑자기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거의 위태위태한 어떤 물리적 상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극한의 어떤 부조화가 바로 생명의 씨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최소의 호흡이 최초의 움직임이 생기려면 흔들바위에 굉이돌을 빼내는 순간에서 시작되지 않으까 하는 생각말이다. 굉이돌을 빼내는 순간 바위는 굴러떨어지고 그 에너지로 어떤 순환이 생기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서 성냥불이 모닷불이 되고 또 들불이 되는 것이 성장이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불과 생명은 하나의 현상 같은 생각이 든다. 다 태우면 꺼지는 것도 그렇고. 나중에는 그 화로마저 사용할 수 없게 되니... 생명이 불이라면 언제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불은 부조화 불평등한 물리적 존재가 만났을 때 발생된다. 태우면서 같아지고 고요해진다. 다 타버린 장작밑으로 새록 새록 숯불이 깜박이고 있는 것만큼 고요한 평화가 또 있을까. 그래 평화란 어쩌면 격렬한 불길후에 남은 재투성이 화로속의 잔불과도 같은 희미하고 서로 어찌 못하는 그런 상태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이 세상을 어떤 한 가지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비약이고 속임수라는 것쯤은 알아야 할 나이다 싶다. 단순하고 설명하기 쉬운 것에 현혹되지 말자. 자기 자신은 단순하게 살더라도 세상이 그러리라 보는 것은 순진하고 정확하지 않다. 아래로 떨어지는 힘이 있고 위로 솟구치려는 힘이 있다. 그 둘의 균형에서 우리는 지금 땅에 발 붙이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단순하려는 것에는 반드시 복잡해 지려는 이유가 있다. 그저 어느 한 가지 그런 것을 봤었다고만 말하고 살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태도가 아닌가.

My first wood works (My desk)

오랜만에 톱질을 해봤습니다. 예전에 중학교때에 책꽂이를 만들어 본 것이 마지막 톱질이었던가 싶네요. 톱질을 하면서 나무가 기대했던 것 보다 단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금속처럼 느껴지더군요. 아주 잘 재단하고 그에 맞는 공구가 필요한 재료라 느낍니다. 여기 제 책상을 보여드리죠.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약 170cm*72cm 의 크기입니다. 오른쪽에 수납공간이 있고 왼쪽에도 있습니다. 괜찮지요? 이것은 제가 만든 테이블 램프입니다. 재료는 대나무 3개 + 램프 3개 + 기타 부재료 등.. 입니다. 생각보다 좀 출렁거려서 .. 다시 만들 예정입니다. 이 책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 공구와 재료를 샀습니다. 다행이 원래 사려고 했던 책상(운송비 포함)의 예산 안쪽으로 정리가 되어 만족합니다. 좌측부터 사포 8장, 전동지그톱, 전동 드릴, 연장선, 클, 나무 드릴, 톱날(지그용), 대패, 드라이버 세트, 일반자, T자, 콤파스, 연필 등입니다. 나무는 11겹 Birch plywood 2장(4'*8')을 이용했습니다. 90달러 전체 약 380달러 정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공구가 300달러 정도 였으니 이제 차분하게 본전 뽑을 생각입니다. 내일 칠을 할 생각인데.. 자료가 없네요. 그리고 테이블 램프 멋지게 만들고 싶은데.. 고민입니다. 역시 자료를 좀 찾아봐야지요. 일하며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습니다. 목공이 나와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도 약간 했지만 직업으로 삼기에는 좀 늦었지요. 여하튼 가끔 좋은 작업을 좀 해서 작품 수를 좀 늘려볼 요량입니다. 도면 다운로드

첫번째 야구클럽 참가한 시윤

이 V는 뭘 의미하는 것일까? ㅎㅎㅎㅎ 여기도 쌍 V ㅎㅎ 역시 홈런이었군. 무지 잘 할 것 같다.

울면서 리듬을 맞추다

사람들은 살면서 종종 슬픔을 겪게 된다. 그 수많은 슬픔들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장면 1. 아프리카의 어디 부족의 장례식. 장례식을 5일장으로 하는데 사람들이 망자가 떠나가게 된 것을 슬퍼하면서 춤을 춘다. 리듬은 아프리카 고유의 다소 빠른 리듬에 눈물을 흘리면서 춤을 춘다. 늘완디 눈물을 흘리며 이웃인 콘고에게 말한다. (사박자의 스텝을 밟고 있다) " 킨다쿤데씨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어" " 그래 맞아 이웃들에게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솔선수범 하셨던 분이지 " 콘도가 펄쩍펄쩍 뛰며 울부짓는 소리로 리듬을 맞추며 대답했다. 마치 랩퍼와도 같이... 장면 2. 인생의 희노애락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 여하튼 늙어지고 슬퍼지고 헤어지고 죽어진다. 그 어떤 추상적인 가치도 사실 이 예정된 비극을 비켜갈 수는 없다. 비극이라도 다 슬픈 것일까. 비극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잊었다면 그리 슬프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눈물을 흘리면서 리듬을 맞추는 꼴이 인생의 한 단면을 표현하는 만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가에 인생을 표현하기를 구덩이 아래에는 독사들이 가득하고.. 구덩이 바깥에는 맹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한 가닥의 동아줄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데 그마저 쥐가 갈아먹고 있어 언제 끊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동아줄에 의지하는 있는 인간은 꿀한방을을 핣아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꼴이다. 글쎄다. 이 상황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슬프고 그렇지 않다면 우스운 일이다. 울면서 리듬을 맞추고 싶은가? 눈물을 흘리면서 춤을 추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