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종종 슬픔을 겪게 된다. 그 수많은 슬픔들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장면 1. 아프리카의 어디 부족의 장례식. 장례식을 5일장으로 하는데 사람들이 망자가 떠나가게 된 것을 슬퍼하면서 춤을 춘다. 리듬은 아프리카 고유의 다소 빠른 리듬에 눈물을 흘리면서 춤을 춘다.
늘완디 눈물을 흘리며 이웃인 콘고에게 말한다. (사박자의 스텝을 밟고 있다)
" 킨다쿤데씨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어"
" 그래 맞아 이웃들에게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솔선수범 하셨던 분이지 "
콘도가 펄쩍펄쩍 뛰며 울부짓는 소리로 리듬을 맞추며 대답했다. 마치 랩퍼와도 같이...
장면 2.
인생의 희노애락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 여하튼 늙어지고 슬퍼지고 헤어지고 죽어진다. 그 어떤 추상적인 가치도 사실 이 예정된 비극을 비켜갈 수는 없다. 비극이라도 다 슬픈 것일까. 비극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잊었다면 그리 슬프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눈물을 흘리면서 리듬을 맞추는 꼴이 인생의 한 단면을 표현하는 만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가에 인생을 표현하기를 구덩이 아래에는 독사들이 가득하고.. 구덩이 바깥에는 맹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한 가닥의 동아줄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데 그마저 쥐가 갈아먹고 있어 언제 끊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동아줄에 의지하는 있는 인간은 꿀한방을을 핣아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꼴이다.
글쎄다. 이 상황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슬프고 그렇지 않다면 우스운 일이다.
울면서 리듬을 맞추고 싶은가? 눈물을 흘리면서 춤을 추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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